오 리 지 날
1987년 극성스럽게 무덥던 어느 여름날 나는 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원인모를 뇌출혈로 장시간의 뇌수술 끝에 좌 반신 불수가 되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다,
하필이면 중환자실 맞은편에 영안실이 있을게 뭐람.
밤새 간간이 호곡 소리가 들리다가 한꺼번에 와 하는 울음소리가
들리면 또 한사람이 새로 죽어 나간 거다.
나는 언제쯤 저곳으로 실려 나가나?
차라리 의식이 없으면 모를까 몸은 못 움직여도
의식은 있으니 그 고통이 말이 아니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옥황상제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는데 뭔가 잘했다고 내세울만한 일은 하나도 없고
그저 생각나는 게 잘못하고 죄지은 일 들 뿐이다.
남들은 황금빛 찬란한 곳으로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가는데
나 혼자 깜깜한 곳으로 마귀에게 이끌려 간다면 이 일을 어찌할 꼬 !
그렇다고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떼를 쓸 수도 없지 않은가.
왜? 이렇게 살았나?
성당에 같이 다니자고 그렇게 부탁하던 가족들의 말을 왜 안들었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발작만 더 나가면 저승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지금 내 꼴이 이게 뭔가 이대로 못 일어나고 이렇게 너절하게 간다면
고생만 시킨내 아내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어린 두 아들은?
그저 한심 하기만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 해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통회 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어 그렇게 아귀다툼들을 하고 사는가
모두가 헛되고 헛됨을 진실로 깨달았다. .
그리고 마음을 비우니 좀은 편안해졌고, 기어이 살아남아야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내아내의 고통은 여전하다.
천주교신자들을 비롯한 문병객이 줄을 섰으니
내 아내는 앉아있을 틈조차 없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보호자가 밥 해먹을 곳이 없어서
내 아내는 화장실에 숨어서 밥을 해먹었단다.
환자가 고분고분해도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든 법인데
뭐 잘한 게 있다고 신경질만 부려대니 내 아내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몸은 못 움직여도 정신은 있으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당시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지만 중환자실에서
대세를 받아 “라우렌시오”로 다시태어 났고 성서도 많이 읽었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기위해 내 아내가 미는 휠체어에 처음 탓을 때,
영화에서나 보고 TV 에서나 보든 것을 내가 주인공이 되고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병원에서는 6개월 이상 물리치료를 받기를 권했지만
내 집 안방이 왜 그렇게 그리운지 담당 의사를 졸라
형님의 등에 업혀 퇴원을 했다.
집에 와 있어도 나는 누워있거나 쇼파에 앉아 생활을 했고
내아내의 고통은 여전했다.
그중 내가 제일 미안 했던 것은 젊은 내 아내에게
내 배설물들을 받아 내게 하는 일들이었다.
정말 못할 일을 시킨 것이다.
하루는 병원에서 읽은 책이 생각났다.
성인 만화책인가 그랬는데
<오리지날>에대한 해설이 나왔다.
"오리지날" = 오리도 지랄치면 날을 수 있다
라는 뜻이라나
그 상황에서도 얼마나 웃었는지 옆 환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볼 정도 였다.
그래! 나도 지랄한번 쳐보자!
직장동료들을 불러서 안방에서부터 거실 현관을 통해
마당의 나무들에 밧줄을 매어놓고 그것을
붙들고 걸음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정도 지랄을 쳤더니 당시는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혼자 다닐 수 있게 됐다.
그것만 해도 내 아내의 일을 얼마나 덜어주었는가.
한 2주간 더 지랄을 친 후 지팡이를 짚고 아내의 보호를 받으며
평소 5분거리인 직장(홍천군청)엘 35분이나 걸려서
내 책상 내 의자에 앉아 봤을 때의 그 기분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수술한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기에 재발이 걱정되어 서울의
큰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결과 월남전에 참전했으므로 고엽제로
의심된다는 것과 재발 위험성은 거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내가 휴직을 하거나 퇴직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으나.
나는 기를 쓰고 출근을 했고 주변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독종
또는 억척이라 했다.
처음에는 좌절감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고 보니 정신이 불편하거나 마음
이불편한 것에비하면 몸이 좀 불편한 것은 그져 육체적 활동에 일정부분제약을 받을 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눈총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도 받으면서
10여 년을 더 다니다 98년도에 명예 퇴직을 했다.
지금 나의 두 아들은 직장 따라 외지에 나가 있고 나는 아내와 같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국가에서 주는연금과 작은 "행정사"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여보! 당신이 내 아내가 되어주어 정말
고맙소" 하며 업어주고 싶을때가 참 많다.
비록 한쪽 몸이 불편하여 보행자체가 힘들고 한쪽손밖에
못쓰지만 그나마 오른손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문맹은 살아도 컴맹은 못산다기에 컴퓨터 앞에서 한동안 지랄을 쳤더니
나사는 동네에서 40대 이상에서는 그래도 내가 컴 박사다. 지금도 나는 죽음의 문턱에 섰던 때의 일을 생각하며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산다. 한편 성당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다니고 있다. 투병생활 중 수많은 신자 분들의 문병과 기도, 그리고 격려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특히 사랑과 용서)를 깨닫고 남과 다툼이 있을 시는 내가 잘못한 게 없더라도 먼저
사과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더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남이 좋다고 하는 일만하고 살아도 백년도 못살고 가는 게
인생인데 남이 싫어하는 일 따위는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언제 갈지도 모르는 이 인생! 가면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이 인생! 세상천지를 다 준다 해도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이
인생! 내가 이 세상에 왔으니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가야 되는데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을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행복이리라
사는 동안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오늘도 노력하며 산다.
노병의 잡글
중
이를 행해보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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