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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번뇌
1) 불일암(佛日庵)
깊은 산속 절에는 깊은 꽃비 내리고
우거진 대숲은 푸른 연기라
흰 구름은 산마루에 엉키어 자고
푸른 학은 중을 짝하여 조는구나
2) 가야에 놀다
낙화의 향기 마을에 가득한데
숲 너머에서는 새소리 정답게 들려오네
묻노니 절은 어디에 있는고
봄산에 구름이 절반일세
3) 봉선을 지나다 낮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머리는 희었으되 마음은 늙지 않았다고
고인은 일찍이 말하였거니 이제 닭 우는 소리 한 번 들으매
장부의 할 일은 다 했네
홀연히 나를 알고 보니
모든 일이 다만 이렇거니
만천금의 보장이 본래가 하나의 빈 종이일세
보장(寶藏):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하는 묘법을 보배에 비유하고 그 묘법을 쓴 경전을 보장이라고 한다
4) 운유
발우를 씻고 향 사르는 일 외에는
인간사 모른다네
스님 깃드린 곳 생각하거니
솔과 전나무 맑은 바람에 시끄러우리
나물 뿌리 씹고 누더기 입었으니
꿈에도 인간사에 이르지 않네
늙은 소나무 아래 높이 누었으니
구름도 한가롭고 달 또한 한가롭네
병 속의 새요
꿈 속의 사람이로다
세상의 이익을 애써 구하는 이
업의 불길에 섶을 더하는 것일세
5) 약산 모정
나의 성품 원래 취(醉)한 것 아니거니
누가 나 홀로 깨어 있다 말했느뇨
달 잠기니 서해가 어두어지고
구름 거치니 북산이 푸르구나
큰 들에는 오직 어화뿐이요
넓은 하늘에는 다만 새벽 별이로다
사람이 망망한 방에 앉았으니
온 천지가 하나의 모정(茅亭)일레라
***굴원의 어부사에 <세상 사람 다 취했는데 나홀로 깨어있네>란 귀절이 있음 모정: 초가집 정자
6 ) 도홍을 구하는 선자를 경계함 마음이 나는 곳에 죄가 있나니
어둠 속에 귀신이 많으니라
용미연을 구하지 마라
멀리 좇아와 주는 사람에게 부끄러우리라
*** 도홍(陶泓) :벼루의 다른 이름 *** 용미연(龍尾硯) :벼루의 이름 당나라의 괴오가 용미연을 가졌는데, 친구가 갖고싶어 하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 괴오도 마음으로는 주기로 허락하였으나 아직 주지 못 하고 있던 어느날,친구가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감에 쫓아가서 벼루를 주며 "내가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7) 벽천 선화자에게
공안[화두]을 분명히 드는가
뜨지도 말고 잠기지도 말아야
비고 밝기가 물의 달 같을 것이며
늦추고 급하기는 거문고를 고르듯이 하라
병든 사람이 의원을 구하는 뜻이요
어린 아이 어미 그리는 마음이라
공부를 진절(眞切)히 하는 곳
붉은 해 동녘 멧부리에 오르리
8) 남쪽으로 가는 길에
인간의 길이 우습구나
높은 재주 지닌 사람은 집을 이루지 않네
차가운 창가의 늙은 선비
이를 만지며 생애를 이야기하네
***이 :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해충 지금은 소독약에 멸종 되다시피 되었지만 옛적에는 옷을 자주 삶아 입어야 했음.
9) 법장 대사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오고
물거품을 불에 태웠네
우습구나 저 소를 탄 사람
소를 타고서 소를 찾누나
10) 심선자의 행각
고목은 봄빛을 이별하였고
영양은 뿔을 돌에 걸었네
산천을 유람하며 마쳤으니
나에게 집신 값을 돌려다오
11) 임종게
천 생각 만가지 헤아림이
붉은 화로에 한 점 눈이로다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 위를 가나니
대지는 허공을 찢누나
12) 백젼 선화자에게
서방을 염불하는 법은
결정코 생사를 뛰어 넘는 것이니라
마음과 입이 만약 상응하면
왕생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으리라
일념으로 연꽃을 밟는 것이
누가 일러 팔천리라 하는고
공을 이루고 명 다하기를 기다리면
큰 성인이 와서 그대를 맞으리라
13) 진기(眞機)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진(眞)이라 하고 접촉하는 것을 기(機)라 라 한다 어떤 사람은 중생이 진에서 나와 진으로 사라진다 하였고 어떤 사람은 기에서 나와 기에 들어간다고 하였다.이것은 비 록 달인의 말이지만 모두가 상대를 면치 못하는 것이고 명목 을 세우는 것이니 사람으로하여금 더욱 버박(法縛)을 더 하게 할뿐이다.나의 안에 본래 망념됨이 없거늘 어디에 진이 있어 얻을 수 있으며, 본래 일이 없는데,어디에 기가 있어 세울 수 있겠는가 세상에 뛰어나 높은 선비가 되고자 하거든 부디 높은 곳에 착안하라. 아, 대장부의 한마디 말과 하나의 행동이 천지를 흔들고, 귀신을 감동 시키며,봄과 가을을 호흡하고 해와 달을 삼키고 토하나니 어찌 헛되게 하겠는 가 우선 망(妄) 과 기(機) 두자로써 하나의 율시를 지어 보인다.
나의 대원경에는 본래부터 범부와 성인이 없네 기를 잊으니 불도가 융성하고 분별하면 마군이 성하네 눈[眼]속의 헛 꽃을 버리려하거든 먼저 마음의 병을 옶애라 장풍이문득 구름을 쓸어버리면 하늘의 달이 창에 와 비치리라.
*** 법박 : 불법을 구하여 거기 지나치게 집착하여 헤어나지 못함 *** 대원경 :부처의 경계,또는 사람이 본래 지닌 절대적 순수한 성품 거울에 한 점의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추어 모자람이 없듯 사람의 본래 성품도 그와 같음을 비유함 대원경지(大圓鏡地)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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