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 2. 고통을 느끼는 주체, 즉 "나"는 없다.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합니다.
괴로움의 정체는 생각입니다.
괴로운 생각을 떠오르면, 그때 괴롭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생각을 버려라..라고 하신것이고
이 수행이 바로 사마타, 즉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삼매 수행입니다.
고통을 느끼는 주체, 즉 나라는 것은 없다.
좀 황당하지요.
내가 없다니....
이 말이 맞다면, 정말 괜히 고통스러워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근데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무아지요. 無我
상처입을 "나"라는게 없다는 겁니다.
과연 뭐가 상처입냐는 얘깁니다.
이 육체일까요? 이 마음일까요?
육체라면, 죽은 시체에 욕을 하면 죽은 시체도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하는데... 시체는 못움직입니다.
그럼 이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마음이란 본래 형체나 모습이 없습니다.
모습과 형체가 없는데 무슨 고통이 있겠나요?
마음의 힘이란 참 묘하고 강하서,
스스로 착각해버리면...즉 스스로 그렇다고 믿어버리면 실제 그렇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뭔지, 고통이 뭔지 분석을 해볼 생각은 일체 해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분석할 생각은 꿈에도 생각못합니다.
그저 괴로워하거나 신세한탄만 해댑니다.
불교는 분석의 종교입니다.
괴로움의 종교지요.
괴로움을 분석합니다.
그래서 끝장냅니다.
그러므로써, 결국 행복에 도달합니다.
내가 없는데, 내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괴로움이 지속됩니다.
고통당하는 내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정신적인 모든 괴로움은 다 사라지겠지요.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나 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도 "나"지요.
그럼 당연히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나를 분석해야만 합니다.
만약 "나"가 있다면 치료가 가능하고
만약 "나"가 없다면 치료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걸 전도몽상이라고 합니다.
즉, 착각이라는 거지요.
내가 있다고 스스로 착각했다는 뜻 입니다.
근본이 잘못된게 아니라는 거지요.
고통은 원래 있는게 아니란거지요.
고통 당하는 주체가 없는데, 뭔 고통이 있겠습니까?마는 이게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요.
그래도 희망이 아닙니까?
고통당하는 주체가 없다니........ 대단한 희망입니다.
부처님은 이런걸 알려주신 것이지요.
"나"라는 이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확한 의미.....
나라는 것은 이 육신과 정신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걸 오온이라고 합니다. 즉 다섯가지 집합체라는 의미입니다.
첫째, 육신
둘째, 마음
오온 = 색, 수, 상, 행, 식
육신 = 색
마음 = 수, 상, 행, 식
수(受) : 느낌
상(想) : 생각
행(行) : 의지
식(識) : 인식
불교에서는 마음을 네가지로 나눕니다. 수상행식..
여기서 가장 주된 것은 識이고 나머지는 그 식에 따른 반응입니다.
마음이 수,상,행,식입니다.
이 수상행식으로, 고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따져보겠습니다.
첫째, 식(識)이 예전에 불쾌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인식
둘째, 그럼 불쾌한 느낌이 듭니다. 기분 나쁘지요. 느낌
셋째, 그럼 생각합니다. 상상하지요. 저 못된 것을 어떻게 혼내줄까? 생각
넷째, 생각이 결정되면 뭔가 행위를 하려고 합니다. 의지
이렇게 이게 계속 이어지면서 반복됩니다.
생각이 이어지지요.
존재를 괴롭히는 게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이란 것도 마음중에 하나지요. 네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있습니다.
불경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느낌이란 무상한 것이다. 즉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무상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요.
왜 고통스러운 것을 나 자신으로 여기는가?
나라는 것은 없다.
내가 느낌의 것도 아니요, 느낌이 나의 것도 아니다.
비어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마음에 대해서 분석해야만 합니다.
불교만큼 마음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놓은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나라는 개념은 고정불변된 영원한 그 무엇을 말합니다.
즉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주체를 말합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근데 조금만 살펴보면 아시다시피,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몸뚱이도 애기때는 쬐그맣다가 점점 커지다가 늙고, 매 순간순간 변합니다.
그 변하는 몸뚱이를 나라고 믿고 삽니다.
그러니 고통이 생기지요. 점점 안좋게 변하니까요. 늙어가고, 추해지고...
변하는건 "나"가 아닙니다.
나라는 건 어떤 고정된 주체가 있다는 걸 뜻 합니다.
근데 모든게 다 모조리 다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요.
이 마음이란 것도, 불교에서는 네가지로 구분해서 분석하는데..네가지 모두 다 영원하지가 않지요.
느낌, 생각, 의지, 인식.... 이 네가지도 매 순간순간 변합니다.
이 고통당하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 그 주체가 나인데, 분석해보면 주체라는 건 없습니다.
그냥 생각일 뿐이지요.
생각을 할 때만 내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괴로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괴롭고 불쾌한 생각을 할 때만 괴롭습니다. 오로지 이때만 괴롭습니다.
뭐가 문제냐면, 항상 생각하는 이 버릇입니다.
항상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이 습관.......이게 고통입니다.
마음을 비워버리면, 고통이고 뭐고 다 사라지지요.
고통스런 생각이 계속 지속되면 그게 진짜 고통입니다.
이게 사실은 집착이지요.
한가지 생각을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는게 바로 집착입니다.
이때가 문제지요.
이 생각이라는 것의 특징은 주로 이기적이게끔 만듭니다.
생각만 했다하면, 아집...즉 나에 대한 관념에 빠져들게 됩니다.
생각하는 주체를 찾아야겠지요.
생각하는 주체는 없습니다.
텅 비어 있지요.
우리의 본래 마음의 모습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엔 아무것도 없지요.
가끔씩 바람에 먼지가 허공에 흘러들어오긴 합니다만, 허공의 본체는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이것과 같이 우리 마음도 허공과 같습니다.
그냥 가끔씩 또는 때때로 불쾌한 생각, 기쁜 생각 등이 먼지처럼 흘러들어오게 되지요.
그 먼지를 "나"라고 여기면서 사는게 사람입니다.
주객이 바뀐거지요.
손님이 주인행세를 하는 겁니다.
주인은 허공인데, 먼지가 주인행세를 하는거지요.
마음이란 것이 이 물질인 육체를 "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이 물질이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둘째는 이 마음이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 쉽게 알 수는 없는 문제지만, 명상으로 꾸준히 분석하다보면 서서히 알게 되겠지요.
고통을 분석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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