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세상에는 이별이 없다』
*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추운 겨울날 몇 시간 동안 밤거리를 걸으면서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인적이 드문 거리,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아무런 인생의 준비도 없이 홀로 떠도는 느낌을,
아니 자칫 잘못하다간 이 세상의 낙오자로 살 수 있다는
생존의 절박감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주어진 인생을 함부로 허비하거나
허술하게 낭비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204
*
그해 가을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푸른 지상에 별을 달았다.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의 세상은 이제 없다고……
간절하게 호명해야 할 멋지고 우아한,
로맨틱한 세상을 기다린다는 것은
영원한 환상처럼 가벼운 일이다.
단지 고독한 삶의 변통을 위해
아스라한 육신의 땅
신이 허락한 참회(懺悔)로
거칠고 메마른 메커니즘을 돌아
그을린 창가에 흔적처럼 나부끼는 시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수많은 애정의 별을 매달고
동심의 나라로 가자고 끝없이 펄럭이고 있지만
메아리 없는 식탁에 앉아
적막한 입김으로 외치는 버림받은 자들의 광야(廣野)
삶은 거룩한 분노를 지나
눈물 한 방울도 귀한 이곳에서
차마 가슴으로 다 들려줄 수 없는 얘기는
이제 긴 강물에 묻자.
얼굴을 섹시하게 꾸미고
볼륨 펌으로 단발머리를 하고
육감적인 스키니 진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아무리 먼 여행지를 돌아다닌다고 해도
누구 하나 마중 나올 리 없는 적막한 세상에
긴 여운을 남기는
도타운 언어가 사라진 곳에서
내 지성의 밭을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하여 명상의 숲을 밝히고
차디찬 어둠을 걸러내는 작업을 위해
헌신의 발가락을 죽도록 후벼본 적이 있는가!
한 가닥의 희망에 대해, 아니 진정한 절망에 대해
얼마만큼 가슴 처절하게 읊조려본 적이 있는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용서는 언제나 변명이다.
오늘 밤 오갈 데 없는 별똥별 하나가 이 지상으로 떨어져
아무도 깨달을 수 없는 진실을 내려놓은 채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의 반란, 썩어 문드러진 도심의 창밖으로
내가 사는 이 지상에 별이 뜬다는 사실 이외는……
그리고 별은 세상 얘기를 더는 들려주지 않으려는 듯
수줍은 기억을 찾아 길을 재촉하고 나면
그 낯선 땅에는 새로운 추억이 자라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온 산천을 휘감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오래도록 고독하게 하겠지…….
그러면 이별 없는 세상은
초록빛 슬픔을 딛고 예지(叡智)의 새벽을 돌아
은총의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서로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여보면
메밀꽃 온 누리 살가운 미소로
따뜻한 세상인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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