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너에게세들어사는동안 / 박라연

병노 2011. 7. 19. 00:34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  박 라 연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 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나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무늬가 보일락말락한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

아직은 낯이 설어

수십 번 손바닥을 으므리고 펴는 사이

수십 번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

그 집의 뒤켠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꽃이 있네

절망이 사철 내내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 하나 빚겠네

그 건너편에 물론 강물이 흐르네

그 강물 속 깊고 깊은 곳에 내 말 한마디

이 집에 세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나... 처음... 사랑할... 때... 처럼... 그렇게...

내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면

내가 내 몸을 폭풍처럼 흔들면서

내가 나를 가루처럼 흩어지게 하면서

나,

그 한마디 말이 되어보겠네

출처 : 떠날때는 말없이
글쓴이 : 김근우 원글보기
메모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퍼온글)  (0) 2011.07.30
예시모음  (0) 2011.07.21
[스크랩] 행복한 풍경 - 이해인  (0) 2011.06.27
[스크랩] 도종환 시모음  (0) 2011.06.24
[스크랩] 誘 惑  (0) 201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