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스크랩] 마음의 정화와 소원이 동시에 성취되는 불교의 기도법 /박혜원

병노 2009. 10. 14. 23:22
마음의 정화와 소원이 동시에 성취되는 불교의 기도법 /박혜원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전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전에 비나이다.”

지금도 시골의 한적한 절이나 암자에 가보면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손을 싹싹 비비며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나이다’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글자 그대로 ‘마음을 비운다’입니다.
즉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전에 비나이다’의 의미는
‘부처님전 앞에 내 마음을 비우겠습니다.’라고 부처님전에 맹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 스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도가 성취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보면 한결같이
“마음을 비우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까.

즉, 마음을 비워야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기도 성취가 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혼란을 느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빈 마음’이라면 아무 생각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간절한 소원’은 이미 빈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불가의 스님들은 불자들에게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선 우선 마음을 비우시오’라고 했겠습니까?


바람은 자도 파도는 친다.

우리는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쉬임없이 머리칼이 자라고 있으며 심장은 계속 뛰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표면 의식이 잠들어도 잠재의식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양쪽(표면 의식과 한마음)으로 열려 있어서
한마음에서 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잠재의식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현상이 간절한 염원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누구를 간절하게
사랑하게 되면 비록 의식이 잠들더라도 잠재의식은 깨어 있어서 꿈에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간절한 염원은 잠재의식에 새겨지게 되므로 아무리 표면의식이 잠들어도
그 메시지는 잠재의식의 작용에 의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잠재의식과 한마음 사이에 연결된 통로를 통해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잠재의식과 한마음을 연결하고 있는 마음의 통로에 부정적인 마음이나
증오나 저주, 탐욕 같은 어두운 마음이 있다면
그 어두운 마음이 장벽이 되어 간절한 메시지가 한마음에 도달되지 못하고 가로막히게 됩니다.
설사 한마음에 메시지가 전달되더라도 한마음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두운 마음의 장벽에 가로막혀 극히 일부만이 외부로 발현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한 바람을 성취시키기 위해선 우선
내 마음속의 어두운 마음들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한다 해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불교의 선각자들은 다음과 같은 난제를 화두로 잡게 됩니다.
‘원을 성취시키는 동시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마음이 정화되는 동시에 소원이 성취되는 불교의 기도법

비행기가 초음속으로 공기를 가르며 날 때면 대단히 큰 소음이 실내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이 소음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음파를 객실에 투사하면
시끄러운 소음이 일거에 소멸된다고 합니다. 이를 ‘반소음파에 의한 소음제거방법’이라고 합니다.

기도가 성취되는데 가장 방해되는 요인은 바로 매사에 부정적인 마음, 냉정한 마음들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들의 공통점은 바로 어두운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어두운 마음의 반대되는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밝은 마음입니다.
자비와 평화와 범사에 감사하고 매사에 겸손한 마음들이 바로 밝은 마음입니다.

묘하게도 불교의 대표적인 기도법들이 바로 염불, 절, 불상관,
자비관 등 한결같이 밝고 맑고 거룩한 마음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음수련법들입니다.
그런데 불자라면 누구나 절이나 염불법을 마음을 닦는 수행법이라 하지 않고
절 기도법, 염불기도법이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염불이나 절을 열심히 하게 되면 간절한 염원이 성취되는 영험담이
옛날부터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어떤 원력을 세운 큰스님네들이 절이나 염불 등으로
백일기도, 천일기도를 하여 원대한 원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염불할 때 결코 두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염불 속에 어떤 바람을 섞는다면 그것은 염불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 밥만 먹고 잠잘 때 잠만 자듯이 오직 염불만 하고 절만 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간절한 염원은 내가 잠을 자든지 염불을 하든지 상관없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한마음으로 날아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는 날아가는 화살이 마음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게
그 어두운 마음을 소멸시켜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불이나 절 기도는 그동안 어두운 마음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간절한 염원을 직통으로 한마음에 전달되게 도울 뿐만 아니라
한마음에서 발현되는 성취의 에너지 또한 막힘없이 외부로 발현되게 도와줍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가 천국에 가려면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라거나
큰스님들이 아이들을 ‘천진불(天眞佛)’이라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아이들의 마음이 어른들에 비해 매우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마음은 ‘비어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소망성취법으로 마음 수련법을 들고나온 불교의 기도법은 이래서 탄생한 것입니다.

“비우겠습니다. 비우겠습니다. 제 소망을 부처님전에 일임하면서
제 어두운 마음, 인색한 마음을 염불로 비우겠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마다 마음수련 쪽으로 이끌어
일석이조의 시너지(상승) 효과를 얻게 하는 기도법을 창시한 옛 선각자들에게
새삼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인연 계룡산 청룡사


출처 : 계룡산 청룡사
글쓴이 : 다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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