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예수에게 후손이 있다.(펌)

병노 2014. 2. 25. 15:51

 

                                    예수에게 후손이 있다!!
 

기사 내용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

(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막달라 마리아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은 것이 아니라 구세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이 될려다가
 유대인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부활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자녀들과 프랑스 (gaul) 지방정착예수은둔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예수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 마르세이유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번성함에 따라 예수혈족은 겉으로

예수혈통임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포함하여 많은 예수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영국을 비롯한 유럽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 (聖堂騎士團, 1118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소도원이라는 유명비밀조직믿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비밀기록들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폐허가 된 이 성채성당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소니에르에 의해 양피문서보물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를 누린 신부이야기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성혈성배출판이 되어

세계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기독교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영국 법정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기독교인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증인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예수묘비명이 있는 예수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사진까지 보여주며 내용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없었다.
주심판사판결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법원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믿어집안자손으로서 예수님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사실부정하려고 무던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십자가에서 프랑스망명하여 84살까지 죽었습니다.
예수로마 병사 판델라아들이었습니다.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을 닫는 소란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 지속되고 세계확대되는 해  

판결문공개해외 유출금지시키고 언론보도통제하는 조치취하기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타종교개종을 하였으며  

유럽미국 등에 서도 많은 교회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이 나와 세계적화제가 되자 대한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 (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판결상황대해서는 보도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급격퇴락하던 그 당시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기독교대한민국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매달사람죽지 않았다증거로서 예수시신성의(聖衣)라고 하여

독교와 로마 교황청예수십자가에서  죽었다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사람이 아닌 사람감쌌던 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십자가에서 않았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십자가에서 않았음을 더욱 분명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유럽교회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성당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시체에는 필요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몰약침향 (알로에추출물)

(요한복음19:40)과 피, 에 의해 얼굴전신그대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 사람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

토리노 성의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95일에는

토리노 성의예수시신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성의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십자가에서 않았음을 더욱 분명증명 하고 있다.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 신약성경불경내용일치한다고 합니다.

 

함게 풀어보고 알아 볼까요

0 . 석가는 40일 단식일대는 마라라는 악령에 시험을 받았다 (불경 상은 부경전)

_ . 예수는 40일간 단식 후 사탄에 시험을 받았다 (성경 누가복음 4장1절)

0 . 석가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파견하였다 (아함경)

_ . 예수는 12제자를 이스라엘 전역에 파견하였다 (마태복음 10장1절)

0 . 성가에 열정적인 제자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중 석가에 확신을 받고 끝까지 걸어갔다

     (본생경무쌍품

_ .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옛후가 건저 주었다 (마태복음 13장 25절)

0 . 석가는 발위에 있는 한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 (본생경 주석78)

_ . 예수는5개의 떡과 두마리에 물고기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 (마태복음 14장 17절)

0 . 석가는 과부의 두냥 헌금이 정말 값지다고 햐였다 (잡보장경)

_ . 예수는 과부의 한냥헌금이 거룩하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21장 1절)

0 .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 (본생경)

_ . 소경이 인도로 구덩이에 빠진다 (누가복음 6장)

0 .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 (본생경)

_ . 목자들이 천사를 본다 (누가복음 2장)

0 . 니르바나(열반) 와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수 없다 (무문자 설경)

_ .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수 없다 (누가복음 16장

0 . 아버지에 재산을 상속받아 타향에서 방탕하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아버지의이야기인장자궁자 (무문자 설경)

_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누가복음 15 :11) 똑같은 줄거리이다

0. 예수의 신상수훈은 불교적 말씀들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부분으로

    법구경에서 석가모니가 설파한 사랑"과  자비" 의 설법과 똑같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왜 속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존재하나 하나  하시는데,  존재합니다. 다만.... 사기꾼이라는거지...

 

정치사기극에 속아넘어 가십니까?

예수십자가에서 않았는데.. 빌라도에 의한 정치사기극인데...

예수에게 후손이 있는데  속고 사십니까?

정신좀  차리시도록  화끈하게  올립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출처 - 1982년 2월 20일 동아일보

 

 

 

 

사기 행각의 끝 >

피에르 플랑타르와 공모자들이 행한 여러가지 위조와 조작은 그 내부 가담자 중에 한 명이었던  장 뤼크 셔멜의 폭로(1970년 대 후반)에 의해 1차로 밝혀지지만, 그런 폭로가 처음에는 플랑타르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그 이유는 장 뤼크 샤멜이 시온수도회에 관한 주장과 조작에 기사나 책을 써서 동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아마도 그의 이런 장뤼크 샤멜의 전력?을 이용하여 플랑타르가 적절한 대응을 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그리고 피에르 플랑타르의 말을 믿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심리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된다.


<장 뤼크 셔멜과 피에르 플랑타르>

장 뤼크 셔멜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성혈과 성배'라는 책으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던 플랑타르는,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1993년 스스로 '티에리 장 피에르Thierry Jean-Pierre' 검사에게 접근하여 Roger-Patrice Pelat 이라는 백만장자가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였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플랑타르는 백만장자였던 R.P.Pelat 이 죽자(1989년) 그의 이름을 최근에 자신이 위조한 시온수도회 그랜드 마스터 명단에 올려 놓았었다)

R.P.Pelat 은 사실 당시의 미테랑 대통령의 친구였으며, 1992~1993. 2년 동안 프랑스 정부의 총리를 지낸 Pierre B?r?govoy 스캔들의 중심에서 내부거래/담합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에 죽었던 인물이었었다. 그리고 그 인물을 취조했던 이가 바로 티에리 장 피에르 검사였던 것이다.
예컨대, 피에르 플랑타르는 자신이 대중들의 관심으로부터 잊혀질 때 즈음 죽은 백만장자의 이름을 떠벌리다가 얼떨결에 대통령과 총리까지 얽힌, 프랑스 정부로서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만 것이었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었다.
결국 피에르 플랑타르와 공모자들에 대한 철저하고도 신속한 심문과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랑타르는 '시온 수도회'와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이 조작된 것이며 그가 주장했던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 자백하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 법원은 피에르 플랑타르에게 시온 수도회와 그 밖에 관련된 위조된 문서들과 거짓 주장에 대해 두번 다시 거론하지 말것을 엄중히 경고하였고, 그는 2000년 2월 3일 죽는 날까지 파리에 숨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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