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 승연, 너는 모른다 -어느 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충고-

병노 2012. 6. 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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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시인)

너 참 곱고 예쁘구나.
나도
다 큰 처녀가
옷을 벗어 일확천금을 버는
호시절에 태어났다면
너만한 손녀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몰골만 사람 형국이지
오래 전에 눈물도 다 마르고,
간도 쓸게도
아니 오장육부가 다 썩어 문드러져
사람이 아닌데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울고 있는
너는
우는 모습도 곱고 예쁘구나.

너는 대박을 꿈꾸고
숯칠을 하고 카메라 앞에 옷을 벗었지만
나는 원수놈들의 욕정의 총부리 앞에
순결의 치마를 벗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을
너는 모른다.

너 참 곱고 예쁘구나.
나도 소시적에 네 젖통만큼이야 못해도
윗마을 아랫마을 건장한 남정네들
군침깨나 흘리게 하고
달덩이 같은 궁둥이도 있었던 것을
너는 모른다.

네가
얼마나 뉘우치고 비는지 몰라도
잘못을 비는 그 손도 참 곱고 예쁘구나.
나도 너만할 때
열 손가락 봉숭아 꽃물 곱게 들이고
수틀 앞에 않아
구정불란사 색실로
밤새워 수놓던 시절이 있었던 줄
너는 모른다.

너 참 곱고 예쁘구나.
나도 그 원수놈들만 아니었다면
건장한 사내 만나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시집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을
너는 모른다.

너는 돈을 위해
요염하게 연기로 스스로 옷을 벗었지만
나는 죽지 않으려고
하얗게 겁에 질려 강제로 옷이 벗겨겼다.
네 몸값은 수억대이고
내 몸값은 보리쌀 한줌 값도 못되는 것이
내가 못나 그런지
내 조국이 가난하고 힘이 없어 그런지
너는 모른다.

너는 벗어 이 시대 스타가 되고
나는 벗어 우리 역사의 죄인이 되어
너는 벗어도 당당하게 할말이 많고
나는 벗어서 수치스러워 할말이 없다.

너는 벗어 매력적인 여자가 되고
나는 벗어 치욕적인 노예가 되고
너는 벗어 네 작품을 만들고
나는 벗어 한 시대의 눈물과 한숨을 만들었다.

너는 벗어 부를 얻고 이름을 날리고
나는 벗어 내 부모 형제
조국과 겨레에게 저주스런 치욕을 안겨주었다.
이게 다 누구 잘못인 줄 너는 모른다.

너도 이 나라 백성이고
나도 이 나라 백성인데
너는 벗은 게 오히려 당당하고
나는 벗은 게 도리어 욕되구나.
당당한 너의 누드와
수치스런 내 알몸의 차이를 너는 모른다.

네가 벗으면 수많은 매스컴이 몰려왔고
내가 벗으면 승량이떼가 몰려왔다.
주야로
사시사철 승량이떼가
내 살점을 물어뜯어
진작부터 나는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승량이떼의 타구요 뒷간이었다.

여자도 아니고
사람도.아닌 내가
왜 그때 죽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왔는지 너는 모른다.

너는 벗으면 돈이 눈에 아른거렸겠지만
나는 벗으면 고향 하늘이 아른거렸다.
장독대 가에 맨드라미 심고
울타리 밑에 봉숭아 심었던
제 이름자도 쓸줄 모르던 일자무식
불쌍한 우리 어머니
어질고 순해빠진 우리 아버지
올망졸망 불쌍한 내 동생들
그리고
내 동무와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고향 뒷 동산
들판
달밤
시냇가
그런 것이 어른거려서
죽기 싫었고
알보보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닌데
죽지 못했다.

그래
그때
원수놈 총부리 앞에서
내 속곳이 벗기우고
내 자궁이 찢어지기 전에
혀 깨물고 죽든지
그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건데
그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되고
썩은 육신 이끌고
역사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조국에 돌아와도
고향에도 못가는 까닭을
너는 모른다.

그때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이렇게 우리 집안을 욕되게 하고
우리 동네를 욕되게 하고
내 나라를 욕되게 하는 골칫거리가 될 줄 알면서도
구차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까닭을
너는 모른다.

너같이 곱고 예쁘면
마음씨도 고울 것 같은데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도우려고 옷을 벗었다니
어쩌면 그런 기막힌 생각을 다 하니

그래 이번에 네가 돈을 벌면
다음에는 애국심 키워주는 유관순 누드
그 다음에는 현모양처가르치게 신 사임당 누드 만들려고 했니.

내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욕된 하늘을 이고
앞앞이 말못하고
모진 목숨 죄인으로 살며
죽을날만 기다리는데
너까지 나를 욕보이지 말라.

너같이 곱고 예쁜 애가
살날도 많고,
앞날이 창칭한데
그러면 못쓴다.

불행한 시대와 승량이 떼가
나를 망쳤는데
어리석음이 네 눈을 찔러
네 신세를 망치는 줄
너는 모른다.(2004.2.24)

출처 : 면역과 생명과 시낭송 블로그
글쓴이 : 서장군(상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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