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우리가 잘모르는 두종교(불교.기독교)의 차이점. (펌)

병노 2009. 5. 3. 08:50

 

 

(( 끝까지 읽어보시고 비판해 주세요 ))


날조 4....기본사항 날조

(1) 성경(聖經) ;

성경이란 성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뜻하기도 하고, 종교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이다.
불교의 대장경, 유교의 사서 오경, 회교의 코오란 등이 다 성경이다.

그런데 예수교는 자기네 구약과 신약을 아무 설명 없이 `성경`이라 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행하여 오던 못된 짓의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기독교의 경전은 `바이블`이다.
꼭 성경이라고 하고 싶으면 `예수교의 성경`이라고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싫으면 고대 히브리 말이나 희랍 말로 사용하던지, 그것은 자유일 수 있다.

필자의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교가 인류 사회에서 지탄 받아 마땅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예수교는 공존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는 셈이다.


(2) 하느님(하나님) ;

하느님(하나님)은 우리 나라의 고유한 자연 신(神)이다.
`하나` `하늘` `할아버지` `한아버지` `하느님` `하나님` `하늘님`등의 말은 "하(크다, 많다)"에서 파생한 말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신(神)인 여호와나 알라 신과는 달리, 하나님(하느님)은 순수한 자연 신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한국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수시로 자신의 잘 잘못을 비추어 보는 거울 같은 신이 하나님(하느님)이시다.( 자연일수도 우주일수도 있다 )

하나님(하느님)은 자연 신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면 거부 반응 없이 무조건 선(善)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

예수교가 짧은 시간에 크게 자란 것도 `하나님`을 자기네 신으로 도용(盜用)했기 때문이다.
연약하고 불안한 인간이기에, 바이블의 내용은 아는바 없이, `하나님`이란 말에 솔깃하여 빠져들고, 마침내 세뇌되어 쇠귀신화하고 만다.

예수교의 신은 하나님(하느님)이 아니다. 야훼(여호와)이다. 명심하도록.
실제로는 자음만으로 4 자(YHWH)가 진짜 이름이다
그래서 소리내어 부를 수 없는 신이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빼고 맘대로 부르도록.....

히브리어나 영어에서나 하느님,하나님 등등의 말은 없다..단지..히브리어는 야훼(여호와)이고 영어에서는 그냥 god(신)으로 되어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긴 말들이다.

 

 


(3) 헌법(憲法) ;

헌법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에 관한 근본 원칙을 정한 기본 법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기네 회칙을 `헌법`이라 하고 있다.

신(神)은 "하나님(하느님)"을 도용(盜用)하고,
교리 책은 "성경(聖經)"을 도용하고,
회칙은 헌법(憲法)을 도용하고 있다.
으뜸을 뜻하는 의미의 용어는 모조리 도둑질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조직이 바로 예수교이다.

자기네 조직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듯싶으면, 벌떼 처럼 일어나 아우성친다.
악담과 폭력과 협박이 그들의 주무기이다.
단군(檀君) 문제도 자기네 종교에 이득이 안된다고 해석되므로 저렇게 악을 쓰며 저지한다.

 


(4) 종교의 자유 ;

세계 각국이 헌법으로 보호하는 `종교의 자유`는, 예수교를 믿어도 좋고, 유교를 믿어도 상관 없고, 불교 신앙을 가져도 좋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오로지 바이블에 의하여 태어난 종파끼리 서로 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이 지겹고, 더러워서 울며 겨자 씨 먹기로 만들어 놓은 법이다.

이 예수교의 종파끼리 벌이는 전쟁은 10년, 20년으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사납고 잔인한 예수교의 콧대를 어느 정도 꺾어 놓은 사람들이 바로, 목숨을 걸고 투쟁한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가들이었다.

그 후에 겨우 겨우 만들 수 있었던 게 `종교의 자유`란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나오면 예수교인들은 쥐구멍을 찾아야 옳거늘, 고개를 바짝 쳐들고 그 말을 인용하며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5) 설교 내용 ;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그 게 예수교의 가르침인지, 불교 또는 유교나 도교의 가르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 바이블을 한 두 구절 읽고서, 그것에다 얼기 설기 엮어내는 예화들은 모두가, 이미 우리 나라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가치관 즉, 유교, 불교, 도교 등의 가르침들을 출처도 모르면서, 잘도 떠들어댄다.
그것들이 어째서 여호와(예수) 의 것인가?

 


***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성경` `하나님(하느님)` `헌법` `종교의 자유` `설교 내용` 등등, 우리 나라에서 그럴듯한 것 중에 예수교가 도용(盜用)하지 않는 것이 없다.
도용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예수교의 독점물로 만들어 놓는다.
그 재주는 가히 훌륭하다 고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 예수교가 훔쳐 쓰지 않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날조 5....교리날조


<목사는 성직이 아닙니다>

목사는 성직이 아닙니다. 개신교의 교리를 제대로 적용하였을 경우에 모든 직업은 성직입니다.
개신교에서는 1532년 종교개혁때 개신교는 만민제사장 교리를 채택하였으며 개개인이 제사장이요 개개인이 성직이며 개개인의 몸이 교회라고 선언했습니다.
더구나 목사'만' 성직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 교가 아닌 다른 어떤 종교입니다.

 

 

<부활승천사화 날조>

승천사화, 발현사화는 위조품

예수의 부활 승천은 CE 2 세기 이후입니다.
즉, 사람들이 적어넣은거지요....

마가16 : 9 ~20와 누가 24장 51. 52 절 괄호친 부분의 승천사화 구절들은 나중에 삽입된구절입니다.
개역판 바이블엔 괄호표시로 있습니다.


바티칸본을 근간으로 하는 카톨릭의 바이블에서는 주석에서 이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수정을 본 것이 두 종류가 있는 데 짧은 것, 긴 것 두 개를 다 소개하며
고본에는 없었다고 색인 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신교의 바이블(시나이본에도 없음)에는 주로 긴 것을 쓰고 있는데 이 점을 주석 난에 "어떤 사본에는 9-20 절까지 없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첨가된 문구 중 논란이 많은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지상 명령 구절(16장 15절)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지상 명령이 포함된 구절들이 4 세기경이 지나서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후세 사람들에 의해 가필이 된 것입니다.
예수의 말이나 사도들의 예수 사후 행동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말을 들은적이 없는것처럼 행동했음, 예루살렘에 머무름)

즉, 땅끝까지 전파하란 말도 날조된 것이며
더우기 예수가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다가
심판하러 내려올거란 말도 CE2~4 세기에 가필하여
문서를 변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사기신경`인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허구>

(( 석가 3000년전에 -> 공자 2500년전에 -> 예수 2000년 전에 태어난 순서 ))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 석가도 동정녀 마야 에게서, 샤오샨트도 동정녀 출생, 오시리스도 동정녀출생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든 첫 기적부터

--> 예수에게는 이게 첫 기적이지만 오시리스는 더 많이 했습니다.
예수의 기적이 사실이라면 오시리스의 이적도 사실이고 진실일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병자를 치료하는 기적

--> 석가모니는 바라떡 일곱개로 4000 명 먹였습니다.
(불경『본생경』)
-붓다(석가)는 발위에 있는 한 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 (본생경 주석78)
-예수는 5개의 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마테오 복음 14장 17절)

 

==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비롯한 수많은 기적들..

--> 석가도 물위를 걸었고 물에 바진 제자를 구해줬습니다.
( 불경『불전(佛典)』『아함경』『본생경 무쌍품』)
-붓다의 열성적인 제자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 중 붓다의 확신을 받고 다시 끝까지 걸어갔다 (본생경 무쌍품)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 주었다(마테오 복음14장 25절),바이블『마태복음 14:22∼29』의 예수는 물에빠진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다고 핀잔을 줍니다.

 

가장 큰 기적인 3일만의 부활까지...

--> 오시리스도 부활했고 샤오샨트, 크리슈나 예제우스도 부활했습니다.


(( 비슷한 점 ))

-붓다는 40일 단식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불경 상응부경전)
- 예수는 40일간 단식 후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 (루가 복음 4장 1절)

-붓다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에게 파견하였다 (아함경)
-예수는 12제자를 유대 전역에 파견하였다 (마테오 복음 10장 1절)

-붓다의 열성적인 제자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 중 붓다의 확신을 받고 다시 끝까지 걸어갔다 (본생경 무쌍품)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 주었다(마테오 복음14장 25절)

-붓다는 발위에 있는 한 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 (본생경 주석78)
-예수는 5개의 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마테오 복음 14장 17절)

-붓다는 과부의 두냥 헌금이 정말 값지다고 했다 (잡보장경)
-예수는 과부의 한냥 헌금이 거룩하다고 하였다 (루가 복음 21장 1절)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 (무문자설경)
-소경의 인도로 구덩이에 빠진다 (루가 복음 6장)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 (본생경)
-목자들이 천사를 보다 (루가 복음 2장)

-니르바나(열반)와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무문자설경)
-신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루가 복음 16장)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허랑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장자궁자(법화경 신해품)와 신약성서
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루가 복음 15 : 11)는 똑같은 줄거리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불교적 교리들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부분으로 법구경에서 붓다가 설파한 사랑과 자비의 설법과 똑같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

-->정작 예수는 자기를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천당도 가는게 아니라 천국이 가까이 온다, 천당은 네 맘속에 있다


불경『원각경 보안보살장』을 보면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있다 즉 心卽是佛.
마찬가지로 바이블『누가복음 17:20∼21』에서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고) 구약이나 유대교엔 지옥이 없고 Sheol(무덤)의 개념,예수가 말한 유황불은 Hell이 아니라 Gehenna(예루살렘외곽의 유황불쓰레기 처리장)였다.


 

 

▶ 삼위일체는 진리이다.

-->삼위일체는 교부들이 마리아를 성모로 추대하려니까
마리아가 하나님의 엄마가 되는 모순을 피하려고 고육지책으로
동양사상을 표절하여 만든 급조된 교리이다.

더구나 마리아를 중보자로 숭상하지 않는 개신교에서
삼위일체를 진리라고 떠드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서 투표로 결정한 신성(神性) 과 삼위일체설>

-->CE 325년 니케아 공의회(1차 종교회의) 에서는 318명의 주교들이 공개투표로서 예수를 신(神)으로 만들고
2차 종교회의에서는 (콘스탄티노플 A.D. 381년)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만들기 위해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들의 투표로 결정했는데,

 기독교는 그 삼위일체교리를 절대적인 교리로 수호하면서, 지난 1600 년간 수없이 많은 살육을 저질렀습니다.

(예를 들면 칼뱅은 삼위일체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절친한 스페인친구인
세르베투스를 화형시켜 죽였으며 이 교리수호를 위해서는 한 도시를 몽땅
태워죽여도 정당하다고 책까지 냈다)

 

즉,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은 인간들의 투표로 결정된것이며,
그중 삼위일체는 마리아를 숭상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동양사상을 표절하여 만들어 진건데 개신교도들은 마리아를 부정하면서도 그 삼위일체교리는 진리로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십일조는 꼭 해야 복을 받는다.

-->십일조는 레위부족에게 내는 일종의 세금이며, 원래 구제에 쓰이는것입니다.

헌금의 개념이 아닙니다, 더구나 신약에선 폐기되었던 사항입니다. 
노치준교수의 발표에 의하면, 1998년 한국 개신교의 헌금은 2조6천억원이며 이중 사회구제 비용은 3.3% 에 불과합니다.

즉, 교회는 자신들의 십일조도 안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재의 총 헌금액은 약 12조원입니다.

 

 

날조 1....창녀와 막달라마리아

누가복음 8장 2절에 보면 예수가 일곱 귀신을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뽑아냈다고 했다.
마치 막달라에게 잡귀신이 일곱이나 들어 신들린 여자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막달라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당시의 토속종교에서 사랑과 임신을 다스리는 어머니 여신 이시타(Ishitar)나 천당의 여왕 아스타테(Astarte)를 섬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에 입문하기 위하여 일곱 단계의 의식(儀式)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 일곱 번의 신(神)과 맺은 결연을 취소시켰다고 해설한다면 일리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막달라의 이야기가 나오기 바로 전에 어떤 여자가 예수에게 향수를 발라 주는 대목이 나오고, 마가복음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여자가 비슷한 일을 했다고 적혀 있는데, 누가나 마가 둘 다 막달라와 구분할 수 있도록 이 여자들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막달라와 공통된 점이 많아 동일인일 확률이 높다.
또 이 여자들은 예수에게 기름부음(anointment)을 준 사람들이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일은 향수를 바른다는 이야기이며, 왕과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받는 일이었다. 이 여인들이 예수에게 기름부음을 봉사한 이유는 예수를 참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부부가 되는 한 예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가까이 와서는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거의 동격에 가까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예수의 무덤에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막달라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 준 상대도 막달라였다.
따라서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는 독특한 것이었다.

역사상 유대인들의 풍습은 가장 극심한 남존여비의 사상에 젖어 있어 지금도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그러한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물며 그 당시의 여자란 아무리 예수의 부인이었다 해도 대접에 한계가 있었지 않나 짐작된다.
또 하나는 예수가 죽은 후 대개 그의 제자들이나 그 후계자들이 쓴 글들이 모아져 성서를 이루게 되는데, 이들의 당시 위치를 생각할 때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 예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지도 않은 여자의 신분을 구태여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특히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는 좋지 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경 막달라가 예수의 주위에 항상 있는 것이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일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이유로 그녀를 창녀로 과장하여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창녀란, 특히 사원(寺院)의 창녀란 신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돈에 몸을 파는 창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막달라가 실제로 사원의 창녀였다 해도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나 가나안(Canaan) 문화에서 창녀행위란 것은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행해졌다.

사원에서 성품(聖品)을 받은 여자가 임신이나 다산(多産)을 대표하는 여신(女神)을 대신하여 사원을 찾는 남자 신도와 성교를 한다는 것은 성(聖)스러운 영적(靈的)인 결합이었기 때문에 지금 사회에서 대하는 창녀처럼 천한 계급이 아니고 오히려 성직자에 가까운 신분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부일처주의를 주창해 온 그리스도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전한 전직 창녀를 막달라(Magdalen)라 부르는 풍토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날조 2....나사렛 허구

성경 여러 곳에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 나사렛 이고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 때에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있지도 않았다.

나사렛이란 마을은 예수가 가고 8백여 년이 지난 다음에 생긴 마을이었다.

누가복음 4장 29절에 보면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라고 하여 나사렛의 지형을 잠깐 소개하였다. 그런데 나사렛에 가 보면 그 부근은 아주 낮고 완만한 언덕뿐이지 높은 언덕이나 낭떠러지 같은 곳이 없다.

그리스도교가 점점 확대되어 중세기에 와서는 많은 순례자가 생겼고, 순례자들은 예수가 태어난 곳을 가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교회가 마을을 창조해 내고 요셉이 목수였으니 목공소와 예수의 집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1291년에 프랑크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을 모슬렘에게 빼앗겼을 때 어떤 천사가 와서 그 집을 크로아티아(Croatia)로 옮겼다는 것이며, 3년 반 후에는 여기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또 천사가 와서 그 집을 이탈리아의 로레타(Loretta)라는 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산타 카사(Santa Casa) 라고 하여 매년 3월 25일, 8월 15일, 9월 8일, 12월 8∼10일에 이를 개방하여 순례자들이 찾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모슬렘인 터키 사람들이 쳐들어왔어도 천사들이나 하나님은 기적의 힘으로 팔레스타인에 있는 그 집을 부수지 못하게 막지 못하고, 대신 크로아티아나 이탈리아로 천사들이 옮기는 기적을 대신 행했다는 말이다.

만약 집을 그대로 놓아두고 모슬렘들이 집을 도저히 부술 수 없도록 기적을 보였다면, 많은 모슬렘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을 터인데,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실제로 옮긴 이는 천사가 아니라 교회의 일꾼들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나님은 허락하신 것이다.


또 누가복음 2장 39절에 보면 요셉의 본래 고향이 나사렛이란 언질을 주었다.

그러나 나사렛이란 말은 나사렌(Nazarene 또는 Nazarite) 이라는 특정한 사람들의 무리를 뜻한 것이지 지명 자체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장 5절에서 바울이 반국가 선동죄로 잡혀 팔레스타인 총독 앞에 나타났을 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한글 성경에 표현된 글이 있다.

한글 성경에는 나사렛 이단이라 하였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다만 나사렌 종파(sect)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또 아랍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부를 때 나스라니(Nasrani) 라고 한 것과 이슬람의 성경 코란 에 그리스도교를 나사라(Nasara) 또는 나자라(Nazara) 라고 부르는 것은 히브리어 어원의 나즈리 하-브릿(Nazrie ha-Brit) 의 복수형 노즈림(Nozrim) 에 그 근원을 둔 것이며, 그 뜻은 언약을 따르는 사람들 이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비슷한 어원으로 나사롯(Nazaroth) 의 나사르(nazar) 라는 말이 있다.

그 어휘의 어원은 점성학에 있다. 사해의 문서가 발견된 곳은 사해 옆 쿰란이라는 험악하게 생긴 지역이다. 이것은 그 지방에 있던 사람들의 신앙이 투철하여 그 사람들이 신봉하던 종교와 다른 중요한 일에 관한 내용을 담은 문서이며, 그 문서의 소유자들은 유대인 중에서도 에세네(Essenes)라고 부르는 종족이었다.

우선 여기서는 간단하게 나사렛 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 말해 보자.

에세네 사람들은 애초에 태양신을 믿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임에는 틀림없으나 다른 부족들이 모두 음력 달력을 사용하였어도 이들은 양력을 사용했고, 태양을 위주로 하는 점성술(astrology)을 중히 여겼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열 두 띠, 즉 열 두 별자리를 나사롯(Nazaroth) 이라고 불렀다.
이의 어근(語根) 나사르(Nazar) 의 뜻은 마치 매일 밤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 열 두 별자리를 둘러싸듯 한다는 것이다.
즉, 지구를 둘러싼다는 말이다.
욥기 38장 32절을 보면, 네가 열 두 궁성(constellations/Nazaroth)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라는 구절이 있다. 열 두 궁성 이란 열 두 개의 별자리를 말하는 것인데, 영어로 된 근래의 성경에는 constellation , star 또는 zodiac 이라고 되어 있으나 오래된 성경을 보면 마사롯(Mazzaroth) 이나 나사롯(Nazaroth) 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M자와 N자가 섞인 것은 히브리어에서는 두 자를 서로 바꾸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휘는 사해(死海) 쿰란(Qumr n) 지방에 위치했던 에세네(Essene) 부족을 의미했지 지명을 뜻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요셉과 마리아를 비롯하여 예수의 열 두 제자 등 주변 사람들이 에세네 사람들이었다는 증거는 여러 면에서 추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나사렛의 사람 나사렌(한글 NIV에는 나실인이라고 표기하였고, 가톨릭 성경에는 나지르인이라 표기하였음)에 대해서는 민수기 6장 2∼21절에 기술한 것과 같이 대단히 엄격한 절제생활을 어떤 특정 기간 동안에 행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의 고향이 나사렛가 아니라면 어디가 그의 고향이었단 말인가?

위의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말라(Gamala)가 고향이라고 한다.

가말라라는 곳은 갈릴리 해의 동쪽에 있는 어항 벳새다(Bethsaida)라는 마을의 동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일명 독수리 둥지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왜 이런 별명이 생겼는가 하면 험준한 바위가 많아 질로트들이 숨어 있기 좋은 요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로마 폭동이나 항쟁은 항상 질로트들이 시작했으며, 그런 뜻에서 가말라 사람들을 진정한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며, 성경이 씌어진 4세기경에만 하더라도 아직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숨기는 것이 안전해서 예수의 고향이나 가족사항을 계속 거짓 소개했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날조 3....여리고성 날조


바이블에 있는 노아의 홍수는 역사서나 지질학적인 증거는 없는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교단에 있는 무너진 여리고 성곽도 역사적 문헌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6장의 여리고 함락내용을 읽고 가나안 정벌에 대해서 야훼의
능력을 주장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여리고 정벌은 성서고고학상 기원전 1,200년경이라고 보고있는데
고고학이 발전하고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심도있게 연구되면서
이러한 끼어맞추기에 불과한 주장들은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다만,기독교계 내에서 이를 쉬쉬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신도들에게 가르치지 않기로함은 물론, 실제의 사건으로 둔갑되어 위대한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례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20세기 초 예리코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발굴작업을 통해 나온 결론은,

그곳에 성벽이 없었으며,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시기에는
사람이 살고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1950년대의 발굴은 더 구체적으로 확인이 되었는데,예리코의 유적에서 나온 성벽은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여러차례 예리코를 에워싸면 방호했지만,여호수아가 활약하던 시기의 예리코는 기껏해야 마을수준의 규모였거나 아예 사람이 살지 않던 곳으로, 성벽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시말해 기원전 13세기에는 주민이 거주했던 흔적이 없으며,기원전 14세기의 후기 청동기 시대 초기에 건설된 주거지는 별로 중요성이 없는 작고 빈약한 규모였으며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거주지 터에서는 파괴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군대가 언약궤를 앞세우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주변을 행진하며 나팔을 불어 예리코의 높고 튼튼한 성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낭만적일 수밖에 없을겁니다.

더군다나 예리코 다음의 정복지인 "아이"도 작은 성벽 도시인데, 여호수아가 진군하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문서기록으로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소상하게 전하는 이집트의 아르마나서신이 인정을 받고있습니다.

아르마나 문서는 막강한 아멘호텝 3세와 BC14세기에 이집트를 통치한 그의 아들 아케나텐이 주고받은 외교및 군사관련 서신인데 대부분이 이시기에 이집트의 속국이었던 가나안의 여러 도시국가 군주들이 보낸 서신입니다.

서한을 보낸 가나안 군주들 가운데에는 나중에 바이블속에서도 나오는 예루살렘,세겜,므깃도,하솔,라기스 같은 몇몇 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를 바탕으로 추정한다면, 당시의 가나안 지방은 이집트의 직접적이고
치밀한 행정통치를 받았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당시의 가나안 지방의 도시국가들은 성경에서 나온대로 이스라엘 군대가 여러가지 기적과 무력에 의해 정복활동을 벌일만큼 강력하지도 않았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오히려 당시의 가나안의 도시는 주로 지배층이 사는 행동거점이었으며,
군주와 그의 가족및 소수의 관료들이 거주하는 저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농민들은 주변 농촌지역에 흩어져 잇는 작은 마을에 살고있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파라오에게 무거운 조공을 바쳐야 했고,그 대가로 도시의 안보를 이집트 측에서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높은 성벽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보면, 당시의 예루살렘 왕이 파라오에게 영토방위를 위해 50명의 병력을 지원해 달라는 아르마니 서신도 있고, 므깃도 왕도 이웃 세겜왕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할수 있도록 100명의 병사를 파견해 줄것을 파라오에게 요청한 내용도 있습니다.

아르마니 서신은 BC 14세기의 문서라 예리코 정복기간인 BC13세기와는
격차가 있지않겠냐는 질문이 있을수 있겠지만 BC 13세기는 그 유명하고
강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통치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측에서 설치한 요새가 BC 13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발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수십만의 유랑집단이 강력한 이집트의 군사력이 가나안에 현존하는 시기에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낭만적인 환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과 역사적 발굴이나 문서들 하고는 맞지 않는 내용이 꽤 있는데
고고학적 발굴이나 문서들이 가짜일까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심판하러 내려온다
-->사본에 없는 말을 삽입 날조한 것임.시나이본,바티칸본 어디에도 없고 ,
천주교 공동새번역 바이블에는
1. 막 16:9-20 에 대해 "2 세기에 어떤사람이 16:9-20의 발현사화와 승천사화를 덧붙였다
2. 눅24:51,52 "하늘로올리우" 에 대해 "몇몇 고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 로 써있습니다

 

구약에는 에수를 메시야로 예언했다

-->바빌론의 왕들, 이사야의 처와 아들을 일컬은 말을 예수를 지칭한거라고 변조해석한겁니다.


예수가 말한 아버지는 구약의 야훼이다

-->예수는 야훼, 여호와를 언급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가 말한 아버지란 석가모니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말한건 모두 불경에서 석가모니가 한 말이었고
예수가 행한 행적이들은 거의 석가가 했던 그대로를 따라 한 것입니다
『불경과 바이블 왜 이렇게 같을까(윤청광 著) 』
호리(堀堅土)교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참고.

 

사탄은 인간에게 악한 존재이다

-->사탄이 인간에게 저지른 구체적인 악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오히려 바이블에선 인류를 죽이고 핍박하고 욥의 가족들까지 죽인 자는 사탄이 아니라 바로 야훼였습니다.


『마태복음 4:1∼11』『마가복음 1:12∼13』『누가복음 4:1∼13』에는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는 이야기가 있는데, 석가모니도 악마의 시련을 받는 이야기가 『본생경』『아함경』『불소행찬』『불본행경』『잡아함경』등 불경에도 많이 실려 있으며 그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려 한 것까지도 불경과 바이블이 서로 똑같습니다.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Amen):  고대 이집트에서, 신(神)들의 왕으로 숭배된 아멘신을 뜻한다.
원래 테베 지방의 신이었으나, 이집트가 통일이 된 후에 파라오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으며, 특히 태양신인 라(Ra)와 동일시되어, 아멘라로 불리었다.
머리에 한 쌍의 깃털 장식을 쓰고, 턱수염이 긴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몬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장 9절)`......

이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2000여개 언어가운데 불과 20%만이 신·구약 바이블으로 번역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바이블공회연합회(UBS)발표)
그러므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바이블은 다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요?

암만 독생자를 죽여서 남의 죄(있지도 않았지만)를 사하여 주겠다는게 대단한 사랑이니까 알아달라고 떼를쓴다 하더라도, 채 알리지도 않고서 심판하겠다는건 아가페사랑이라고 말할수 없겠지요?

 

출처 : 샘물교회 자성촉구 국민운동
글쓴이 : 일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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