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지난 대선때 대통령에 출마했던 모 후보가 자주 했던 말이다.
그런데 언뜻 들으면 행복의 기준을 '경제' 에 두고 있는듯 하다.
물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 할수 있지만,
그것이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일수 없다.
행복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경우에도,
고된 노동의 삶 한가운데서도 느낄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누릴수 있다는것은,
행복의 기준이 풍요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신앙인들은 행복을 이 세상 것에서 찾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복의 기준을 신앙의 관점에서 잘 생각해 보면
그냥 아무 댓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곧,
우리네 인생이 행복으로 나아갈수 있게 된 데에는
하느님께서 치르신 그만한 댓가가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를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다."(요한 3,16)
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일찍이 고통과 죽음의 상태에서 행복의 기쁨을 누렸던 민족이 있었다.
바로 주님 사랑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의 소유" (탈출 19,5ㄴ) 가 된 이스라엘 민족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류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전에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그런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는 은총을 베푸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어디가 하느님 마음에 꼭 드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찾을수 있는것은 종살이 하는 가난과 비참함,
고통으로 울부짖는 모습 뿐이었다.
그래서 신음하고 아우성 치며 하느님께 구원을 간청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행복을 맛볼수 있도록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
당신의 독수리 날개에 태워 행복으로 이끄셨다.
앞서 말했듯이 행복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경우에도, 고된 노동의 삶 한가운데서도 느낄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손수 보여 주신 것이다.
단, 하느님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현대의 인류는 이집트 파라오에게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비슷하다.
때론 세상의 걱정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신앙관과 가치관을 흔들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 모든 근심도,
그 어떤 노력도 하느님 사랑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흐르는 물이 막히지 않고 갇히지만 않는다면 어느 곳이든지 채우고 넘쳐 흐르듯이,
하느님 사랑 역시 인간의 마음이 닫혀 있지만 않다면,
인간 스스로가 막아서지만 않는다면 행복은 우리안에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무조건적으로 우리의 전 존재를 채우고 흘러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안에 푹 빠져 사는 삶인 것이다.
바로 그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흘러 넘쳐서,
우리 안에 쌓였던 죄와 허물들이 말끔히 치워지고 씻겨져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아닐까? 요. ㅎ ㅎ ㅎ
Amy sky- I Believe In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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