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남한 개신교 신자의 수는 대략 10만명 수준이었다. 전체(남한) 인구를 2000만명으로 봤을 때, 약 0.5%정도다. 또한, 서울의 교회수는 30개정도였다. 당시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다소 신기한 별종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교세를 보자.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861만 6천명으로 인구대비 18.3%였으며, 기독교계측의 주장을 보면 전국의 교회 숫자는 대략 5만여개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의 숫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업체인 식당 다음가는 숫자다.
그러면 1945년의 빈약하기 짝이없던 한국 기독교계가 이처럼 엄청난 성장을 하게된 계기는 무엇일까? 항상 권력을 좇는 기독교의 습성과 미군정청과 이승만의 한국 기독교화정책의 일환에서 였다.
1945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진영(우파)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종전(2차대전)후 진주한 여타의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점령군 소련의 행패는 북한 주민들에겐 재앙덩어리였다. 더구나 한국 기독교가 일제의 앞잡이 노릇으로 일반인들에게조차 부정적인 인식이 각인되고, 민족진영의 지도자들중 기독교계가 다수 있었던 탓에 김일성조차도 기독교가문(외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을 중심으로한 북한 권력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북한 기독교계의 대표적 인물인 한경직(1912~2000)이 종교활동이 자유로운 서울로 내려온 것은 해방되던 해 10월 이었다. 그는 주로 월남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는데, 70년대 후반 '순복음 교회'설립전까지 한국 최대의 교회이자 오늘날 200여개 분파로 나뉘기전의 한국 장로교파의 중심이었던 '영락교회'를 설립한 것이 그해 12월 이었다. (설립당시 명칭은 베다니 교회)
(한국 장로교파의 총본산이었던 영락교회)
완전히 빈손으로 내려왔던 한경직이 월남한지 얼마안가 상당한 자산을 갖춘 대형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북한에서 내려온 반공적인 월남인들을 묶어주는 가장 큰 세력은 '영락교회'였다. 그들은 엄청난 수의 이북인들을 모아서 세를 확장해 갔는데, 이른바 해방정국을 이념폭력의 소용돌이속에 몰아넣었던 '서북 청년단'의 후원자였을 뿐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청년 폭력조직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북출신 개신교 집단들은 자신들의 북한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철저히 반공적인 태도를 취했을 뿐아니라, 불과 몇개월전까지 일제의 사주를 받아 귀축미영(鬼畜美英 ) - 귀신 가축인 미국과 영국- 을 몰아내자고 외치던 태도를 돌변시켜 미국을 은혜의 나라로 받들자는 신념의 변화를 보여줬다.
미군정은 남한 진주와 함께 여운형등을 중심으로한 민족세력들이 세운 '인민 공화국'을 부정하고 친미적일 것으로 여긴 미국 유학파 중심(이승만, 이기붕, 조병옥, 장택상등)의 친미 괴뢰정부와 사회단체를 구성하려 했다. 미군정은 진주와 더불어 조선에 있는 모든 국. 공유재산(일본인 개인재산 포함)을 동결하였다. 그리고 이 재산은 45년 말부터 친미적인 세력들에게 불하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의 재산불하를 '적산 불하'라고 한다. 적산(敵産 : 일제의 재산)은 당시 한국 경제 전체의 80%정도에 이르는 규모였다. 이 재산들은 특히 친미적인 이승만, 한민당, 기독교계등에 집중적으로 불하(대부분 무상)되었다.
특히 그들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기독교 공화국'으로 만들려고 작심한 듯이 한국 기독교 세력에 대한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여기에 프린스턴대 출신의 한경직, 송창근, 김재준등이 우선적으로 미군정청의 눈에 들어왔다. 이들 기독교측에 불하되었던 재산중엔 일제때의 종교단체재산이 있었는데, 대개 일본 신사, 천리교와 불교재산으로써 대부분 기독교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재산이었다. 물론 일본인 개인 소유였던 병원, 농장, 임야, 가옥등도 무차별적으로 불하되었다.
이러한 엄청난 남의 재산을 불하받아서 치부한 한국 기독교는 급신장을 하게 되었고, 그 댓가로 철저한 반공노선으로 미군정을 기쁘게 한 것은 물론이다.
이들이 불하받은 재산들 중에서도 특히 규모가 컷던 것이 천리교(일본 전통종교)와 신사 소속의 재산이었는데, 본시 이들 종교재산은 일제가 떠나면서 대개 한국인 교단이 인수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종교 재산을 가로채고 그들(한국인 교인)을 내몰았다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 세력들의 뻔뻔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 중엔 도리로 친다면 불교계가 인수해야 할 일본계 불교사찰 및 단체의 재산까지 포함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미군정으로 부터 불하받은 엄청난 재산에 대한 그들의 기쁨을 스스로 표현한 대목을 한번 보자.
"해방 후 일본신사나 일본사원 자리가 예수교예배당 혹은 교회학교로 변모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인 동시에 기독교의 승리이며, 한국 교회의 광명이며 사교에 대한 역사의 한 단면인 것이다.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별관 자리에 대한예수교 장로회신학교와 기독교박물관이, 남산 북쪽기슭 경성신사자리에 숭의 여자중고등학교가, 또 그 아래 절간자리에는 창동교회 대한신학교가 점유하고 있으며, 더 그 아래 옛날 천리교 자리에는 한국제일의 근대식 건물을 자랑하고 있는 영락교회가 위치잡고 있는데…”
- 기독공보, 1956년 9월 24일자
“천리교 재단을 문서로 접수하고 보니 그 분량이 거창하였다. 동자동 건물과 제동의 건물외에도 신당동에도 북창동에도 삼각지에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북창동건물에는 김재준 목사가 조선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혁명운동으로 죽었다는 제자의 미망인 전효덕씨에게 시켜 가정여학교를 세우게 하였는데, 이 학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당시 학생인 이일선이 맡아 지키면서 교회를 개척하게 하였다. 삼각지에 있던 건물은 상명여학교 측에서 무슨 사유를 붙여 점유하고 신학교와 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당시 적산처리의 최고 책임자인 남궁혁 박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학교측에 유리하게 처리해 버렸다.…천리교 재산을 접수하는데 있어서는 상명여학교측과 경합하여 어렵게 재산을 교지로 인수받게 되었다.”
- 서울성남교회 50년사
이후 10년동안 한국에는 교회가 약 2000개 정도가 추가로 건설되었으니, 이러한 종교적 성장의 밑거름엔 미군정청으로부터 불하받은 적산의 뒷받침이 있었고, 그중엔 타 종교재산을 가로챈 기독교단들의 뻔뻔함과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은 뒤에 미군정에 의해 저질러졌던 이들 재산불하에 대해 '귀속재산 처리법'을 시행해 법적인 뒷받침까지 해줬다.
특히나 해방후 한국 기독교는 한경직등을 중심으로한 반공 월남인들에 의해 장악되었단 점에서도 해방정국을 이념대결로 몰아 혼란에 빠뜨린 역사의 비극이기도 했다. 해방전 남북한 개신교 숫자는 대략 30만명 정도였고, 이북에 20만명정도 있었는데, 이중 절반이 월남하여 한국의 기독교계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면엔 이처럼 '적산불하'라는 불편부당한 재산의 축적과정이란 역사가 있었다.
(작년 촛불시민들을 경찰의 폭력으로 쫓아낸 서울광장에서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주체의 집회를 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그들의 성장을 돈과 권력으로 뒷받침한 미국의 은혜를 잊지 않기위해 성조기를 성스럽게 여길 것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기독교계에 적산불하를 하면서 저지른 잘못 3가지만 직시해 보자.
1. 특정 종교에 특혜를 준 형평성의 문제다.
-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당시 전체 인구대비 소수 종파에 그처럼 일방적으로 재산을 불하했다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국의 초대헌법에조차 분명한 위헌적 행위였다.
2. 개신교와 관련없는 종교의 재산을 개신교에 불하하였다.
- 천리교, 신사, 불교의 재산들이 도대체 개신교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3. 적산불하의 상당 재산이 개인에게 무상으로 불하되었다.
- 미군정청은 친미적일 것으로 여겨진 기독교 개인에게 재산이 무상으로 불하하였다. 사실 공공의 재산이 특정 개인의 축재를 위해 불하된 것은 이 경우만이 아니었다.
기독교 장로가 권력을 장악한 한국정부는 작년 이런 조치로 또다시 양식있는 국민들과 타 종교단체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다음달부터 오는 11월까지 종교시설 문화예술 프로그램 발굴지원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회나 각종 공연 등을 펼치는 교회 등에 1천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원 내용의 골자는 교회나 성당이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회나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을 하면 건당 1000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당 교회와 성당은 이 돈을 프로그램 진행비, 출연자 사례비, 홍보비 등으로 쓸 수 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 어원 (0) | 2013.08.11 |
---|---|
조상신하나님 (0) | 2013.04.11 |
"부산의 사찰, 다 무너지게 하소서" 충격!! (0) | 2013.03.25 |
[스크랩] 하나님을 훔쳐간 기독교 [19] (0) | 2013.01.31 |
[스크랩] 누드 여인 (0) | 2012.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