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이 자리
승가에 결제, 해제와 함께
안거제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결제기간과 해제기간은 상호 보완한다.
결제만 있고 해제가 없다면 결제는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해제만 지속된다면 안거 또한 있을 수 없다.
여름철 결제일인 음력 4월 보름 이전까지는
책 만드는 일로 너무 자주 산을 내려갔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관계된 일이므로
그 나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팎으로 분주하고 고단한 나날이었음이 되돌아 보인다.
이제는 다시 산의 살림살이에 안주할 때가 되었다.
옛 선사의 법문에
‘때로는 높이높이 우뚝 서고(有時高高峰頂立)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라(有時深深海底行)’는
가르침이 있는데 안거기간은 깊이깊이 잠기는 그런 때이다.
그 잠김에서 속이 여물어야 다시 우뚝 솟아오를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 동안
내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가신 큰어른들의 가르침 덕이다.
해인사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안팎으로 수행자의 터전을 닦던 풋중 시절,
구참 스님들로부터 보고 듣고 익히면서 배운 그 덕이 결코 적지 않았다.
겉으로 수행승의 차림만 했지 안으로는 새카만 먹통이었는데
수행의 덕을 쌓으신 구참 스님들의 말 없는 가르침에
그 때마다 큰 감화를 받아 먹통을 조금씩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홀로 사는 나를 받쳐 주는 저력이 있다면
장경각 법보전에서 조석으로 기도하던 그 힘이라고 생각된다.
큰법당에서 대중 예불이 끝난 후 혼자 장경각에 올라가
백팔배를 드리면서 기도하는 일로 그 날의 정신적인 양식을 마련했었다.
기도는 꾸준히 지속하는 그 정진력에 의미가 있다.
어쩌다 도중에 한두 번 거르게 되면
기도의 리듬이 깨뜨러지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법보전 주련에는 지금도 이런 법문이 걸려 있다.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이 주련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 전율 같은 것이 흘렀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
팔만대장경판이 모셔진 그 곳에서
큰소리로 들려오는 가르침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어디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지 다른 시절이 있지 않다.
(現今卽是 更無時節)’는 임제 선사의 가르침도 같은 뜻이다.
오두막 둘레는 한동안 철쭉이 볼만했다.
그대로 바라보기도 아름답지만
발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다.
여기 사물을 보는 비밀이 있다.
노출보다는 알맞게 가려진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노출을 자랑하는 여름철에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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