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스크랩] 비설거지

병노 2010. 8. 19. 10:24

 비설거지

 

                                                                                                                         -德田 이응철(春川)

                                                                            

 

 서해안까지 장마가 북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된다.

무더위가 푹푹 쪄도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장마가 있어 숨통이 트인다.

장마하면 아스라한 유년기 때 생각이 나고 특히, 장마가 시작되기 전 농촌 집들은 비설거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순식간이다.

 선발대처럼 늘 비바람이 스친다. 그리고 잠시 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면서 조용했던 시골 집들은 묵언의 암시를 눈치 채고 온 식구들이 이내 분주해 진다.

일하던 식구들은 갑자기 하던 일을 내동댕이치고 그 때부터 저마다 비설거지는 시작된다. 종일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일광욕을 즐기던 보리나 밀을 넉가래로 급히 모아 자루에 퍼 담고 이내 멍석을 둘둘 말아 헛간에 정렬시킨다.

 

순간 우르르 쾅-.

드디어 작은 동네가 출렁거린다. 앞산에 따발총 소리가 들리면서 아수라장이 된다. 식구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인다. 어머니는 급히 뒤란으로 돌아가 우선 장독을 덮고, 널어 논 빨래를 거둬들이고, 형수는 화독에서 졸고 있던 마른 땔감들을 갑바로 덮고, 시렁에 고사리, 머위나물들을 성급히 거둬들인다. 어디 그뿐인가?

   천둥에 놀라 개울가에서 겅중대며 음매를 연실하던 누렁이를 형님은 웃통을 벗은 채 달려 나가 부리나케 외양간에 들이매고, 텃밭에 캐놓은 자주 감자들을 함지에 담아 온 식구가 대문 안으로 피신시킨다. 마지막으로 개울가에 감자 녹말가루를 들여오고, 울타리에 널은 모기장을 거둬들이니 드디어 후두둑 굵은 빗방울은 사정없이 내리기 시작한다.

 

미진한 데가 없나 자꾸 주위를 살피시던 어머니가 아니나 다를까 급기야 발을 동동 구르시며 소리소리 치셨다.

-이웃집 충렬네 읍내 나갔는데 이를 어째, 멍석에 고추며 보리를 널고 세탁물도 널었던데 어쩐 담?!

순간, 온 식구가 초가삼간인 이웃집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당을 정리하고 송아지를 들이 매고 울타리에 옷들을 걷어 들인다. 마당에 있는 가마니, 키, 자루 등을 곳간에 옮기고, 돌아오니 그때부터 참았던 비는 소리치며 퍼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온 식구가 젖은 옷을 벗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처마 밑에 빗물이 방울져 보송보송한 마당을 흠뻑 적셔준다.  시간이 갈수록 빗방울은 누런 커피색으로 변한다.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  성화에 이엉 속에 숨어있던 살찐 굼벵이도 떠밀려 처마 밑에 내동댕이친다. 눈이 부시다. 온 식구가 굼벵이를 보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봉당은 온 가족의 쉼터로 화기애애하다.  

  비가 들이치기도 하지만 아랑곳없다. 저마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시원히 가슴을 풀어헤치고 노란 살구를 약탈당하는 살구나무를 응시하던 기억이 새롭다. 들에 나갔던 약병아리들도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어느새 외양간에 와서 봉당을 기웃거린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별미가 선보인다. 당원과 베킹파우더같은 식소다에 밀반죽을 찐다. 햇감자와 강낭콩을 으깬 범벅을 오이냉채국과 함께 나온다. 별미가 등장하면 항상  호박잎으로 덮어 이웃집에 전하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걱정이 되어 읍내 갔다가 양푼을 뒤집어쓰고 달려오던 이웃집 충렬네 식구도 같이 저녁을 들며 비설거지 해 준 얘기로 화기애애하다. 사선으로 줄기차게 비가 내려도 원체 비설거지를 꼼꼼히 해서 아무 걱정이 없다.  바깥마당엔 미꾸라지들이 여기저기 황톳마당에서 꿈틀댄다. 신기했다. 어디서 왔을까? 무지개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라고 어른들이 신비함을 덮어주었지만 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었다.

 

장마가 지면 집 뒤란에는 개삼이 터진다. 여기저기 돌담 사이로 맑은 샘물이 솟구친다. 도랑은 순식간에 불어 넘친다. 소나무 가지가 떠내려 오고 다리가 끊어진다. 큰물이 쓸고 지나간다. 논으로 도랑에 물이 넘친다고 청수와리를 베어 막는다. 야단들이다.

우르르 쾅-.쾅

작은 동네가 하늘의 호령에 꼼짝달싹 못하고 그저 일상에서 죄지은 일이 없나 하고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장마가 지면 늘 어린 내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큰물에 고기들이 떠내려 갈 텐데 오히려 형들은 족대를 들고 나가 강에서 놀던 은빛 찬란한 은색 개리, 부러지들을 잡아 환호성을 지르는 게 희한했다. 

   새마을 운동이 발발하기 전이니 비만 오면 개울을 건너지 못해 저마다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우산이 귀하던 시절, 자루를 쓰고  갈대나 짚으로 된 도롱이를 등에 메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어른들을 따라나선다. 개울 건너 나무에 밧줄을 동여매고 하나씩 애들을 등교 시켜주던 유년기의 추억 또한 아름답다.

   요즘 장마는 예전 같지 않다. 마을마다  하천 정비가 잘되어 큰물이 나가도 걱정이 없다. 후박나무 잎에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영혼을 맑게 해준다. 성인이 되어서도 장마가 도래한다면 왠지 걱정보다 낭만이 앞선다. 유년기 시절 내게 심어준 장마의 정경들이 늘 나를 안내한다. 문명은 크게 발전하지만, 장마에 대한 추억들은 예전이 더욱 값지다. 온 식구가 비만 오면 서둘러 일사분란하게 비설거지를 하던 대가족제도에서의 가족 공동체 정신이 너무 아름답다. 핵가족시대에서 바라보는 부러움들이 진하게 음미해 본다. 젊어서 사람들은 미래의 꿈을 먹고, 나이가 들면 만들어 놓은 추억들이야말로 시대와는 무관하게 평생 양식이 아닐 수 없다(끝) 15.5매

 

#안녕하세요 큰도시에 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며칠전 가입한 회원 잘 부탁올립니다.ㅎㅎ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德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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