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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지금 밖에서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쓰여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몇 해전, 그러니까 1965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였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 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너를 통해서 나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가난한 서가에는 너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메마른 나의 가지에 푸른 수액을 돌게 했다.
솔바람 소리처럼 무심한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재임을 투명하게 깨우쳐 주었다.
더러는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방울처럼 울려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 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
- 법정스님 -출처 : 생활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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