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글모음

[스크랩] 곡선의 묘미

병노 2010. 7. 2. 16:09

    곡선의 묘미 가을입니다.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햇살과 공기, 바람결, 물, 나무들, 모두가 투명합니다. 산사에 사는 수행자들은 귀가 매우 밝습니다. 방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낙엽 구르는 소리, 풀씨가 익어 터지는 소리,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준비로 부지런히 열매를 물고 가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산길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출발지에서 종점까지 훤히 보이는 길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강원도에서 길상사까지 전혀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직선으로 뚫려 있다면 어떨까?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만약 그렇게 직선으로만 된 길이 있다면 아마 지루해서 운전하는 맛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무료하겠습니까? 졸음이 쏟아지거나 사고가 날 것입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한동안 사고가 가장 많이 났다고 합니다. 제가 목포까지 그 길로 가보았는데,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직선이 많고 곡선이 거의 없습니다. 또 개통 초기에는 편의시설이 없어서, 운전자들이 도중에 쉴 수 없었기 때문에 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앞날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직선과 곡선의 상징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 놓은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곡선입니다. 나뭇가지, 흐르는 강물, 산맥, 해와 달을 보십시오. 다 곡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집이나 그 밖의 구조물들은 거의 직선입니다. 직선은 조급하고 냉혹하고 비정합니다. 곡선은 여유와 인정과 운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만을 위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가령 차를 타고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는 동안 많은 사람과 사물을 보면서도 시간 맞춰 목적지까지 가려는 의식 때문에 도중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목표지점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곧 우리들의 일상이자 순간순간의 삶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매 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룹니다. 우리 이전 세대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루어 놓은 삶의 축적이 오늘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비해 여유롭게 사는 것은 그 덕분입니다. 사랑 역시 기다림의 세월을 동반하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움터서 꽃 피고 열매 맺기까지 봄, 여름, 가을이 받쳐 주어야 합니다. 식당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서 음식을 먹어 보면 그곳의 밥은 뜸이 안 들어 있습니다. 뜸이 들지 않은 밥을 먹을 때마다 ‘조급한 현대인들에게 알맞은 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고 즉석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비스런 사랑까지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그 길이 막힙니다. 여럿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남의 처지를 살펴야 합니다. 관계의 이웃을 고려하여, 그 속에서 자신을 찾고 닦아야 합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직선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곡선적인 사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선인들의 여유로운 생활 태도를 배우십시오. 목표를 향해 줄곧 달리지 말고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야 합니다. 가는 도중 여기저기 눈을 팔면서 느긋함을 즐기기도 하고, 더러는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티베트 속담에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티베트는 지역이 매우 넓고 지형이 험준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진 데 살든지 중부지역에 있는 수도 라싸로 성지순례 가는 것이 평생소원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사는 포탈라 궁과 유명한 조캉 사원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동부와 북부의 히말라야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한 달 넘게 걸어야 이곳에 도착합니다. 빨리 도착하려면 빨리 걸어야 할 것이지만, 너무 빨리 걸으면 산소도 희박하고 길도 험해서 금방 지치거나 병에 걸립니다. 그러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위 풍경도 구경하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야영도 하면서 계속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보다 빨리 라싸에 도착해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삶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곡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얻은 삶의 지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또한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기게 됩니다. 그 인생의 저력이 쌓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당장에 이루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삶이 제대로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합니다. -2005년 10월 16일 가을 정기 법문 중에서-


      
      
        출처 : 생활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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