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禪
어떤 고을에 나이든 도둑이 있었다.
이 세상을 하직할 날이 가까워지자
오랜 세월을 두고 갖은 고생 끝에
익히고 쌓아온 도둑의 비법을
그대로 묵혀둘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식에게만 이라도
그 비법을 전해 주고 싶었다.
어느 날 밤 늙은 도둑은 아들 하나를
데리고 밤이슬을 맞으러 나갔다.
요즘 같으면 TV 프로그램을 보고
그 시간을 가리겠지만 옛날 일 이라
칠흑 같은 그믐밤을 택했었다.
물론 호화주택이란 말이 나오기
전이므로 담장이 높으면서도
도사견이 없는
그런 집을 고르면 되었다.
둘이는 평소에 익혀둔 날랜
동작으로 담장을 넘었다.
고방으로 직행.고방에는
커다란 뒤주가 하나 있었다.
도둑은 뒤주문을 열고 아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후 무슨
심사에 선지 문을 닫고
곁에 있던 자물쇠로 채웠다.
그리고 나더니 큰소리로
"도둑이야!"라고 외치면서
담장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때아닌 도둑의 소리에 놀란
집안은 발칵 뒤집힐 수밖에.
그때 그 집안 식구 못지않게
놀라고 당황한 것은
젊은 도둑이었다.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구나
싶으니 앞길이 막막했다.
한편 자기를 이 지경에
몰아넣은 아버지에 대해서
끌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궁지를
모면하여 아버지에게 분풀이를
하리라 이를 갈았다.
궁리 끝에 그는 뒤자 뒤주를
쏘는 시늉을 하였다.
그 집 더부살이는 문이 열린
고방에 들어와 살폈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던 참인데,
뒤주를 쏘는 소리를 듣고
쥐나 잡으려고 뒤주문을 열었다.
그 순간 젊은 도둑은 훌쩍 뛰쳐나와
도망을 쳤다. 그는 어둠 속을
달아나면서 길가에 있는 우물에
커다란 돌을 하나 던져 넣었다.
뒤 쫓아오던 사람들이 풍덩 하는
소리를 듣고 도둑이 우물에 빠진
줄 알고 더 쫓으려 하지 않았다.
"너도 네 계책으로
도망쳐오는 걸 보니
이제는 이 아비의 업을
이어받을 만하구나."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둑의 비법을 전해 주었다.
말로써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 속에서 그 묘리를
스스로 터득케 했던 것이다.
이것은 중국 송나라 때의
선승 법연(法演)이 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그는
선(禪)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선이란 밖에서 얻어들은
지식이나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인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파악, 철저한 자기
응시(凝視)를 통해 자기 안에
잠들어있는 무한한 차조력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그래서 선을 가리켜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한 것이다.
이 무한한 창조력이
사랑이라는 온도와
지혜라는 빛으로써
이웃에게 발휘될 때 선은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선실 안에서만 통용되는
선이라면 뒤주 속에 갇힌
거나 다름이 없다.
뒤주 속에서 활로(活路)를 찾아
인간의 거리로 뛰쳐나와야만
비로소 창조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창백한 좌불(坐佛)은 많아도
살아 움직이는
동불(動佛)이 아쉬운 오늘이다. <19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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