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따를 수 있게 하라
-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라 -
◎“지역감정 이번이 마지막 시대의 어둠 탓하지 말고
진신의 등불 밝혀나가자”
지난 12월19일 새벽 라디오로 개표방송을 들으면서 이 땅에 새
로운 변화의 물결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실로 감개가 무량했었다.
험난한 세월을 거쳐 50년만에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교체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우리 생애에서 처음있는 감격적인 일이다.
왕복 2천5백리 길을 달려가 20년만에 투표에 참가한 것이 허사가 아니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해낼 수 있습니다.
” 선거기간 중 간
절하게 지지를 호소하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모습이 미명 속에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평생의 기회는 주어졌지만
나라의 살림살이는 거덜나서 승리의 축배를 들 여유도 없이
밤잠을 이룰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가 겪어온 인고의 세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같은 시대의 인간동지로서 안쓰러운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회에 새 정부와 새 대통령에게 몇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이 땅에서 지역간의 갈등은 그골이 너무도 깊다.
그 뿌리를 캐자면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야겠지만
가까이는 지지기반이 취약한 군사정권이 지역감정에 불을 붙여 대결구도로 집권,
편협한 정치행태를 자행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사람의 인격과 경륜, 기량과 정책은 묻지 않고 어느 지역 출신이어야만 되고
어느 지역 출신은 절대로 안된다는 이런 전근대적인 억지가
이 땅에서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왔다는 것은 현대적인 신화다.
심지어 일부 지방에서는 시집장가를 갈때도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타지역과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이다.
명문대학출신이며 학교장이 추천하는 사람임에도 특정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일부 계층에서는 김대중 통령당선자가 집권과정에서
혹시 한풀이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씩 겪으면서 온갖 시련을 이겨낸
그가 좁은 도량이었다면 그런 고난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 할 것도 없이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선뜻 김당선자를 지목하겠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지역갈등의 피해자요,
또한 그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국은 한때 참고 견디어 나가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지만
뿌리깊은 지역간의 대결구도는 정치적인 배려 없이는 해소되기 어렵다.
그 절호의 기회가 바로 새 대통령 재임기간이다.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 이 한가지만으로도 그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대 정권의 쟁쟁한 반면교사들의 온갖 행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교훈을 배우고 익혔으리라 믿는다.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마치 전리품을 나눠 갖듯 논공행상식 인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측근들의 장막에 가려 전체를 통찰하는 지혜의 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호남인들 스스로가 지역갈등의 해소를 위해 성숙한 자세로 불이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예향이 지닌 여유와 멋과 아량으로
우리시대에 화해와 결속이 이루어지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영남출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새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은 현명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대통령은 이제 야당의 대표가 아니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국민 앞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를 믿을 수 있어야 존경하고 따른다.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곧 지도력이다.
국민의 에너지는 신뢰에 기반을 둔 지도력에 의해 하나로 결집될 수 있다.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
선거공약은 마땅히 이행되어야 하겠지만
1백가지도 넘는 그 많은공약을 한정된 임기 안에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선거공약에 얽매여 경부고속전철사업과 같은 실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상황은 늘 변한다.
그 변화에 시기를 잃지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치역량이다.
이제 우리는 어둠만 탓할 게 아니라 각자 등불을 밝혀 어둠을 뚫고 나가야 할 때다.
냉혹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한 배를 타고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공동운명선의 새 선장에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자.
본사(本師)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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