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없습니다.-도창스님-
부처님께서 일찍이 ‘나를 섬기지 말고 자성부처에 귀의하라.’ 하신 것은 불자라면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부처님 전에 엎드려 빌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법당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은 아상을 조복받는 하심의 실천이며
나아가 부처님께 자성부처에 귀의하겠다는 서원을 올리는 것인데도
그런 의미의 절이 아닌 기복의 절을 합니다.
복을 비는 것은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성부처를 믿기는 커녕 그냥 ‘복이나 좀 내려주십시오.’
하는 것이니 어찌 부처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신 말씀에
합당 하겠습니까.
부처님을 경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근본은 본래 부처’임을
굳게 믿어당당한 주체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현대는 과학문명의 시대입니다.
유전공학이 이제는 인간까지 복제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 자신의 고귀한 삶을 바깥의 형상에 얽매여 놓는다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자신의 모습을 한번쯤 되돌아 보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초라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더욱 심한 경우는 무속의 말이나 부적 따위에 의지하는 일입니다.
제 생명 제 가족의 일을 남에게 묻는다는 것부터가 우수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돈 몇푼 벌어볼 요량으로 만들어 놓은 붉은 종이 쪽지에서 삶의 의지처를 찾는다는
것은 단지 외도나 미신에 불과한 일입니다.
글로벌 정보화시대에 살면서 어찌 그러한 어리석음에 동참합니까.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신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우기 절대신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강요하는 예도 있습니다.
어떤 류의 신이 되었든 대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빌고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런일 일뿐입니다.
오관을 출중하게 갖추고 태어난 인간으로서 무엇을 향해 떡 해놓고 빌고 밥 해놓고 빌 겠습니까.
불법을 만난 불자로서 어디 의지할 곳이 없어서 부적 따위를 벽에 부치고 몸에 지니고 베개 속에
넣어 놓고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떳떳한 인간이 아닌 노예의 삶일 것이니 살아서 노예로 지내면 죽어서도 노예, 다음 생애도
노예이기를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찌 인간답고 불자다운 삶이 이러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누구나 다 보궁의 열쇠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하셨습니다.
고로 각자 마음의 능력을 계발해서 당당한 주인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허공을 쳐다보며 ‘나를 구원해주소서.해본들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메아리는 없으니
안으로 불을 밝혀 자기부처에 의지하고 자기부처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부처님에게도 의지해선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불법은 그렇게 당당하고 성스럽고 광대무변한 주체의 법이란 말입니다.
밖으로 구원을 갈구하는 약한 법이 아니라 안으로 보궁의 문을 여는 떳떳한 법입니다.
금으로 만들든 옥으로 만들든 어느장소에 모셔졌든 세상천지에 영험한 부처는 밖으로는 없습니다.
밖으로 부처를 찾는 그런 불법을 더럽히는 불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 불법을 더럽히는 일에 뛰어든다면
장차 그 업보를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부처는 바깥세상에 없습니다.
바로 당신 안에 있습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해당화 & 인생 (0) | 2009.07.02 |
---|---|
[스크랩] 친구들아 욕심내지말고 한번읽어보소 (0) | 2009.07.02 |
[스크랩] 일엽 스님의 외아들 일당 스님의 삶 (0) | 2009.05.20 |
[스크랩] 만공대선사 - 나를 찾아야 할 필요와 <나> (0) | 2009.05.20 |
[스크랩] 법정스님의 주옥같은글 (0) | 2009.05.17 |